2020/주저리주저리 14

3. 일본에서 미대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 - 워킹홀리데이 비자에서 유학 비자로

그렇게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에서 유학 비자로 바꾸게 되었다. 비자를 변경하는 절차는 오히려 워킹홀리데이 때 보다 금방 끝났다. 제일 큰 변화는 나를 보증해 주는 소속기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워킹홀리데이로 왔을 때는 내가 나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요구된다. 생활에 필요한 핸드폰 개통, 은행 계좌 개설이라던가, 집을 계약하는 데도 있어서 나는 이방인이기에 언제나 이방인이 아닌 보증인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방인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채 3개월도 가지 못한다. 그렇게나 자유를 갈망하던 나는 생각 이상으로 끊임없이 소속감을 갈구하는 인간이었고, 조금이라도 비어있는 시간들을 견디지 못해 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어김없이 깊은 밤이면 슬..

2. 일본에서 미대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 - 독학으로 미대 입시준비하기

나는 워킹홀리데이 기간에 아르바이트와 미대 입시를 병행하며 준비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에세이이기 때문에 개인 차가 있을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다. 흔한 미대 실기시험을 위한 입시미술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나는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고 당시에는 생각했고, 내가 흥미가 있던 분야는 큐레이팅, 미술비평, 미술사 쪽이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입시준비가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선 나는 오픈캠퍼스에서 학교별 정보를 수집했다. 학과는 대부분 예술학이나 예술문화학과 같은 이름으로, 나는 비실기 학과를 목표로 했었다. 당시에는 1차 서류전형 2차 일본어 소논문 시험과 마지막 최종 면접이 있었기 때문에 작문 공부를 위주로 하였다. 특히나 예술과 관..

1. 일본에서 미대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 - 시작은 워킹홀리데이

나는 무작정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이 일을 저질렀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나는 곧장 한 달만에 떠날 준비를 했다. 준비물은 챙겨도 챙겨도 모자란 느낌이 들어 결국 전날 밤까지 가방을 풀었다가 다시 싸기를 반복했다. 잊어버린 것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니 짐이 거의 국제 이사급이었다. 커다란 27kg짜리 캐리어 두 개를 낑낑대며 터질 것 같은 백팩에 크로스백도 모자라서 추가 수화물로 이불까지 부쳤다. 공항까지는 어찌어찌 부모님이 바래다주셔서 갔지만, 정작 문제는 공항에 도착하고나서부터였다. 하네다 공항에서 신주쿠까지는 의외로 금방 도착했다. 그러나 나는 신주쿠역에 도착하자마자 울 뻔했다. 여..

0. 일본에서 미대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 - 일본으로 오기까지

나는 일본에서 미대를 졸업했다. 한국에서는 미대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일본 미대 유학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여느 고3 못지않게 수시 논술전형을 새벽까지 학원에서 첨삭받으며, 배치표를 보며 정시에는 어떤 대학을 지원할지 고민하며 지내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도 그저 주어진 대로 수능을 보며 다 같이 정해진 길을 떠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수능점수도 그저그래서 고민 없이 재수의 길을 택했다. 주변의 친구들이 그저 재수는 필수라고들 하길래 나도 재수했다. 수능을 두 번 치루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기 때문에 1년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고3 때보다 점수..